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스쿠니 신사/논란 (문단 편집) == 합사 취소 운동과 소송 == 야스쿠니 신사 관련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한국]], [[대만]], [[오키나와]] 출신자 합사[* 合祀: 망자 둘 이상의 혼령을 한데 모아 제사함.][*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것이 확인된 한국인은 19,650명, 대만인은 27,000명이고 추정범위까지 늘리면 한국인은 21,000명, 대만인은 28,000명일 것이라고 한다.] 문제이다. '''[[일본 제국|일제]]에게 강제로 징집되어 전쟁에 나가서 사망한 외국인들의 신위까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징집되어 전사한 부친이나 다른 가족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 많은 유족들이 합사취소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름을 제거해 달라는 소송이 많았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적 해석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그 해석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에서 모시는 신은 모셔진 각각의 신위들이 전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신을 모시는 좌(座)는 단 하나뿐이고, 수백만의 '영령'이 그 단 하나의 좌에 모셔지기 때문에 그 중 일부만 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달리 표현하자면 야스쿠니에서 모시는 신은 수백만의 귀신들이 하나의 도가니 안에 합쳐져 있는 귀신 덩어리이고, 그 안에 귀신을 한번 집어넣고 나면 다시는 꺼낼 수 없다는 소리이다. 야스쿠니 신사 측은 A급 전범 분사 문제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내세워 반대한다. 모셔진 신위가 A급 전범이든 징용 피해자든 뭐든 간에, 사전에 동의를 받았든 안 받았든 어떤 사정이 있든 간에 한번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졌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 불교 식으로 "고인의 불단을 다른 곳에 마련했다고 고인 유해 모신 곳에 성묘 안 가느냐"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사실 일본 전통 [[신토]]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위 단락들에서 설명된 대로 야스쿠니 신사의 애초 건립 목적, 그리고 [[국가신토]]의 종교적 논리 자체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가 신격화된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신민을 양성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야스쿠니의 신의 좌가 하나 운운하는 것도 이 때 새로 만들어진 설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원이 어찌됐건 야스쿠니 신사 측은 그것이 자기네들이 신을 모시는 원칙이라며 전혀 바꿀 생각이 없고, 일본 행정부와 사법부는 그 종교적 해석에 국가가 관여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야스쿠니 신사 측의 주장을 지지, 묵인하고 있다. 물론 야스쿠니 신사의 이러한 입장은 별다른 동의도 없이 합사당한 식민지 출신 피해자 유족들 입장에서는 불쾌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질 소지가 크다. 그래서 여러 유족들이 항의 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일본 법원에 합사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행정부, 사법부 측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백번 양보해서 거기 합사시키는 건 좋다고 쳐도, 그럼 합사된 한국인의 유족이 야스쿠니에 방문하면 받아들여주느냐? 희한하게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일본 처녀 아끼꼬의 진실 찾기' 에피소드에서 이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심지어 '''살아 있는''' [[한국인]]까지 강제로 합사되어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0433260|당사자가 항의해도 무시한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4233|''안녕, 사요나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도록 하자. 그런데 사실 합사된 한국인들 중에서도 [[전범]]이 많다. A급은 없으나 B, C급 전범으로 148명이 있는데, 이들 중 23명은 처형당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한국인 출신 군인 중 가장 높은 직위까지 올라간 [[홍사익]]. 그 때문에 [[대한민국]]이 출범하자마자 [[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09_1948_11_19_0110|외무부나 장택상도 전범 재심사를 요구했고]][[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3_1951_12_09_0130|#]][[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3_1951_12_13_0010|#]], [[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11_1949_04_16_0130|한국인 전범들도 한국 정부에 사정했다]]. 강제징병된 사람도 많았다.[[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2_1951_09_15_0070|#]] 그리고 [[외교]]문제로도 번졌다.[[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5_1952_04_04_0050|#]][[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6_1952_07_17_0090|#]][[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6_1952_07_22_0120|#]],[[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6_1952_09_12_0030|#]][[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7_1952_12_01_0080|#]] [[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8_1953_01_20_0030|전쟁 중에도 한국 정부는 한국인 전범 석방에 노력하는 등]] 야스쿠니 신사와 한국인 [[전범]]은 뗄 수 없는 문제다. 2011년 7월 21일, [[일본]] 법원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2262665|살아있는 한국인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해서 제사를 지내는 건 인권 침해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 이런 강제 합사 문제는 [[일본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종교]]나 유족 의향도 무시하고 막 집어넣어서 [[일본]] 내 [[그리스도교]] 신자 유족들이 소송을 낸 적이 있고, 해결을 위해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NCC) 아스쿠니 신사 문제위원회를 만들어 법정투쟁까지 나섰지만, 친절하신 일본 사법부는 '종교적 인격권은 법적 보호 대상외'라면서 기꺼이 무시해 주셨다. 이 정도면 [[고인드립]]이자 [[부관참시]]의 최종판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 안타깝게도 일본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발언권이 약한 나라라서 이렇게 문제를 삼아도 논란은 커녕 제대로 된 의제화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1400673|#]][[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140416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6201738485&code=210000|#]] 이는 [[일본/사법|일본 사법계]] 특유의 보수주의 폐단 때문으로, 일본의 사법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평온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친다. [[신토]]와 관련된 종교적 관습을 건드리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큰 터부이므로 법리가 어쨌든,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는 것. 이와 관련해서 더 알아보고 싶다면 [[엔자이]]와 [[메이와쿠]] 참조. 즉, 본질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는 신위를 배향함에 있어서 (대상이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대만인]]이든) 본인 혹은 유족의 의사를 전혀 상관하지 않고 철저하게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패전 전에도 그러했고 패전 후에도 그러하다. 영광스러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주거늘, 설령 유족이라 할지라도 다른 이가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야스쿠니 신사의 방식은 [[메이지 덴노]]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고 한다. '''이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올 만한 말인가.'''[* 애당초 일본인이라면 모를까 타국의 사람들에게는 메이지 덴노가 누군지 알든 모르든 한 가지는 일치한다. '''자국의 우두머리는 아니라는 것.''' 여기에 메이지 덴노는 이미 죽은 지 한참이나 지난 사람인데 [[유훈|죽은 사람이 결정한 일에 꼭 산 사람이 따라야 한다]]는 법조차 없다. 심지어 메이지 덴노가 죽은 후(1912년) 합사된 이들은 설령 메이지 덴노가 되살아난들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 자신이 죽은 후 일이니까 그냥 야스쿠니 신사 측에서 되도 않는 소리를 하는 것 밖에 안된다.][* 앞부분에도 어폐가 있는데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영광스레 모셔주는 것' 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야스쿠니 신사에서만 통하는 얘기고 각 종교 믿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서는 매우 불쾌한 행위가 될 수 있으며(일본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만큼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것을 거부할 권리는 분명히 있다.) 외국인은 또 외국인대로 불쾌한 것이 현실이다. 즉 야스쿠니 신사의 '영광스레 모셔주는 것' 에 [[극우]]가 아닌 이상은 많은 사람들이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결국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자신들이 그들을 모셔주는 것을 마치 이타적인 양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당사자나 유족들을 조금도 배려해주지 않는 매우 이기적인 행위다. 여기에 그들을 빼준다고 해도 야스쿠니 신사의 존재 가치가(더이상 모신 사람들이 한 명도 안남는 것)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A급 전범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에 A급 전범도 뺀다고 쳐도 그래도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사람은 여전히 많다.] 참고로 [[아소 다로]]가 비유의 예로 자신있게 입에 올린 [[알링턴 국립묘지]]는 종교는 물론 매장 여부에 있어서도 유족의 의향에 따르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6553861|2013년 10월 23일 한국인 합사 문제 소송이 일본 법원에서 또 한 번 기각됐다.]] 한국인 유족들이 자신들의 아버지를 합사한 것을 빼달라고 소송했으나 5년 7개월 만에 내려진 판결은 “원고들의 모든 요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전액 원고가 부담한다.”로 읽는데 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판사는 판결이유는 밝히지 않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떴다고.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070630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